# 제1권: 조용한 멸종
## 제04화 ― 청첩장이 사라진 거리
### [기록 2033-09-15 : 관찰자의 일지]
> 2033년 가을, 대한민국 통계청이 발표한 분기 합계출산율은 마침내 0.38명을 기록했다.
> 전국의 예식장 85%가 지난 5년 사이 문을 닫았으며, 법원의 이혼 소송 접수 건수 또한 90% 이상 급감했다.
> 갈등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갈등을 빚을 '부부'라는 제도 자체가 사회적으로 소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우편함에서 흰 봉투의 청첩장이 사라진 자리에는, 휴머노이드 정기 점검 안내문과 배터리 리콜 통지서가 꽂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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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동창회의 침묵
서울 서초동의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강은하(38세)는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 나갔다가 묘한 이질감에 휩싸였다.
열 명의 동창 중 결혼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은하를 포함해 단 두 명뿐이었다. 그리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은하야, 너 아직도 남편이랑 둘이 살아? 안 답답해?”
대기업 마케팅 팀장으로 일하는 친구 혜진이 와인잔을 흔들며 물었다.
그녀의 손목에는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반지 대신, 최신형 스마트 밴드가 감겨 있었다. 집 안에 있는 반려 안드로이드의 충전 상태와 바이오리듬을 실시간으로 체크하는 기기였다.
“답답하긴…… 그냥 정으로 사는 거지. 남편이 청계천에서 로봇 수리점 하잖아.”
“야, 차라리 네 남편이 낫다. 내 전남편은 술만 마시면 시비 걸고 생활비 안 준다고 지랄해서 3년 전에 이혼했잖아. 지금 난 얼마나 편한지 몰라. 지난달에 삼진에서 나온 ‘루카-4’ 들였거든.”
혜진이 스마트폰 화면을 켜서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화면 속에는 배우 뺨치게 단정하고 지적인 외모의 남성형 안드로이드가 앞치마를 두른 채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아침마다 클래식 틀어주고, 내가 좋아하는 원두로 드립 커피 내려주고, 퇴근하면 어깨 주물러주면서 내 하소연 다 들어줘. 바람피울 걱정 없지, 시댁 눈치 안 봐도 되지, 돈 달라고 징징대지도 않지. 이런 완벽한 남자를 두고 왜 굳이 인간 남자랑 피 터지게 싸우며 살아야 하니?”
테이블에 앉아 있던 다른 친구들도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내 주변에도 애 낳겠다는 애들 한 명도 없어. 애 하나 키우는 데 3억, 4억씩 깨지고, 대학 보내놔도 취업 안 된다고 원망이나 들을 텐데 뭐 하러 그 짓을 해? 그 돈으로 나 관리하고 안드로이드랑 우아하게 늙는 게 백만 배 현명하지.”
은하는 와인을 한 모금 삼켰다.
친구들의 말에는 단 한 치의 논리적 오류도 없었다.
극도로 효율적이고, 철저하게 계산된 완벽한 행복론이었다.
하지만 왜일까. 은하의 등 뒤로는 왠지 모를 서늘한 바람이 지나가는 것 같았다.
모두가 똑똑해지고 모두가 상처받지 않는 길을 찾아냈는데, 세상은 왜 이토록 서서히 불이 꺼져가는 거대한 극장처럼 식어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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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웨딩홀의 장례식
동창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은하는 종로5가 사거리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10년 전, 은하와 현수가 수많은 하객들의 축복을 받으며 행진했던 7층짜리 ‘노블레스 웨딩홀’ 건물 앞이었다.
주말마다 꽃장식과 웨딩드레스, 하객들의 웃음소리로 북적였던 그 건물의 외벽은 온통 뜯겨 나가 있었고, 거대한 크레인이 ‘웨딩홀’ 간판을 끌어내리고 있었다.
*쿠구구궁.*
떨어진 플라스틱 간판이 바닥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
그 자리에는 이미 새로운 외벽 현수막이 내걸리고 있었다.
**[삼진-로보틱스 라이프스타일 플래그십 스토어 11월 그랜드 오픈]**
**“당신만을 위한 완벽한 평생의 반려자, 이제 직접 맞춤 설계하십시오.”**
웨딩홀 1층의 화려했던 유리 로비는 쇼룸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하객들이 사진을 찍던 포토월 자리에는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성형 안드로이드와 턱시도를 차려입은 남성형 안드로이드가 나란히 진열되어 있었다.
유리창 너머의 안드로이드들은 인간보다 더 완벽한 대칭의 이목구비와 눈부신 미소를 지은 채, 지나가는 행인들을 굽어보고 있었다.
“……저게 우리 결혼식장이었는데.”
은하의 눈가에 쓸쓸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신랑과 신부가 손을 잡고 미래를 약속하던 성스러운 공간이, 이제는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 반려자’를 쇼핑하는 마트로 변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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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우편함의 침묵
은하가 방학동의 오래된 아파트 단지로 들어섰을 때, 1층 우편함 앞에는 경비원 노인이 먼지를 털어내고 있었다.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네, 어르신. 수고 많으세요.”
은하는 자신의 집 502호 우편함을 열었다.
예전 같았으면 봄가을마다 서너 장씩 꽂혀 있던 붉은 리본의 청첩장은 단 한 장도 없었다.
우편함 안에는 오직 세 장의 우편물뿐이었다.
1. **[평택 삼진전자: 휴머노이드 배터리 팩 2차 무상 리콜 안내문]**
2. **[강북구청: 출산 장려금 5천만 원 상향 지원 안내 (신청자 미달)]**
3. **[대한노인복지회: 독거노인 인공지능 돌봄 인형 무상 보급 신청서]**
구청에서 출산 장려금을 5천만 원으로 올렸다는 전단지는 구겨진 채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아무리 수억 원의 돈을 쥐여준다 한들, 이미 기계와의 안락함에 중독된 인간들에게 ‘타인과의 결합’과 ‘출산의 고통’은 그 어떤 보상으로도 메울 수 없는 공포의 영역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은하는 우편물을 쥐고 계단을 올라갔다.
복도는 고요했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쿵쾅거리던 발소리가 들렸을 복도에는, 오직 집집마다 현관문 너머에서 흘러나오는 반려 안드로이드들의 나지막한 인공 음성만이 웅웅거리고 있었다.
“주인님, 목욕물 온도를 39도로 맞추었습니다.”
“오늘도 수고하셨어요, 음악을 재생할까요?”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수십 개의 방마다 완벽한 기계의 요람이 인간들을 부드럽게 감싸 안고 있었다.
인간은 누구도 싸우지 않았고, 누구도 피 흘리지 않았다.
그저 스스로의 의지로 혈통의 문을 닫아걸고, 인류라는 종족의 역사를 가장 평화롭게 끝내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