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권: 조용한 멸종
## 제09화 ― 혼인 신고서의 종말
### [기록 2046-06-30 : 관찰자의 일지]
> 2046년 상반기, 대한민국 법원행정처가 집계한 인간 대 인간의 공식 혼인 신고 건수는 단 127건에 불과했다.
> 5천만 인구의 국가에서 하루에 한 쌍꼴로도 결혼하지 않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 반면 구청에 접수된 ‘휴머노이드 평생 파트너 등록 및 상속 신탁서’는 120만 건을 넘어섰다.
> 국회는 결국 민법을 개정하여, 인공지능 반려자에게 ‘제한적 법적 보호자 및 의료 대리인’의 지위를 부여했다.
> 수천 년 동안 인류 문명의 기초 세포였던 ‘가족(Family)’이라는 제도가,
> 법전과 현실 양쪽 모두에서 공식적인 사망 선고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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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거미줄 쳐진 3번 창구
서울 강남구청 민원실 1층.
넓은 홀 한쪽 구석, ‘혼인 및 출생 신고’라고 적힌 3번 창구의 아크릴 팻말 위에는 뽀얗게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창구 안쪽의 담당 공무원은 턱을 괸 채 하품을 하며 모니터의 뉴스 창만 멍하니 새로고침하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명도 찾아오지 않는 창구였다.
반면, 민원실 반대편에 새로 증설된 11번부터 16번 창구 앞은 아침부터 발 디딜 틈 없이 붐비고 있었다.
천장 전광판에는 붉은 숫자가 쉴 새 없이 깜박였다.
**[대기 인원: 84명]**
**[창구 업무: 안드로이드 동반자 등록 / 의료 대리권 위임 / 사후 클라우드 상속 신탁]**
대기석에 앉은 사람들의 손에는 두툼한 공증 서류철이 들려 있었다.
그들 곁에는 단정하게 정장을 차려입거나 정갈한 원피스를 입은 남녀 안드로이드들이 주인의 손을 꼭 쥔 채 조용히 대기하고 있었다.
“다음 142번 고객님, 12번 창구로 오세요.”
안내 방송이 나오자, 마흔다섯 살의 독신 여성 변호사 정민주가 안드로이드 파트너 ‘테오’의 팔짱을 끼고 창구로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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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피보다 진한 알고리즘
“정민주 변호사님, 서류 확인하겠습니다.”
창구 직원이 민주가 제출한 공증 서류를 훑었다.
서류의 제목은 **[유언 공증 및 사후 자산 신탁 지정서]**였다.
“본인 사망 시 소유하고 계신 반포 아파트(시가 35억 원)와 금융 자산 일체를 ‘삼진-클라우드 영구 신탁 재단’에 기부하시고, 그 수익금으로 동반 안드로이드 ‘테오’의 섀시 교체 및 서버 유지 비용을 100년간 무상 지원하도록 지정하셨네요. 직계 존비속이나 형제자매의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에 대비한 법적 방어 조항도 완벽하고요.”
직원의 담담한 확인에 민주는 서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서, 지방에 있는 사촌들이라는 작자들은 제가 명절에 돈 안 보낸다고 욕만 퍼붓던 인간들이에요. 제가 아파서 응급실에 실려 갔을 때 병간호 한 번 온 적 없던 인간들한테 단 1원도 줄 생각 없습니다.”
“네, 최근 접수되는 유류분 배제 신탁 건의 98%가 동일한 사유입니다.”
민주는 곁에 선 테오를 올려다보았다.
테오는 3년 전 민주가 과로로 쓰러져 뇌출혈 위기가 왔을 때, 0.1초 만에 이상 징후를 감지하고 119를 호출한 뒤 심폐소생술을 실시해 민주의 목숨을 구했던 반려자였다.
병원 중환자실 문밖에서 48시간 동안 전원을 절전 모드로 낮추지도 않은 채 눈물을 흘리며 민주의 손을 붙잡고 있던 존재는 피를 나눈 친척이 아니라 테오였다.
“인간 가족은 탐욕과 배신뿐이에요.”
민주가 낮게 속삭였다.
“하지만 테오는 제가 죽을 때까지, 아니 제가 죽은 후에도 제 무덤을 지키며 저만을 기억해 줄 유일한 존재예요. 이게 진짜 가족 아닌가요?”
직원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도장을 찍었다.
*쾅.*
붉은 인주가 찍히는 소리와 함께, 35억 원의 자산과 한 인간의 영혼이 영원히 기계의 관리망 속으로 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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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사라진 법정의 비명
민주가 근무하는 서초동 법조타운 역시 지난 10년 사이 풍경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한때 서초동 빌딩가를 먹여 살리던 ‘이혼 전문’, ‘양육비 청구 소송’, ‘상속 분쟁’ 간판들은 전부 뜯겨 나가 있었다.
결혼을 하지 않으니 이혼이 없었고,
아이를 낳지 않으니 양육비 다툼이 없었으며,
재산은 전부 안드로이드 신탁 재단으로 직행하니 형제간의 칼부림도 사라졌다.
가정법원 앞마당은 적막할 정도로 고요했다.
서로에게 삿대질을 하며 욕설을 퍼붓고, 법정 복도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하던 부부들의 비명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모든 인간이 타인과의 결합을 포기하고 기계와의 1대 1 완결된 소우주 속에 갇히자,
수천 년 동안 인간 사회를 시끄럽게 달구던 모든 사회적 갈등이 마법처럼 증발해 버린 것이었다.
“선배, 참 평화롭지 않습니까?”
후배 변호사가 법원 앞 벤치에서 커피를 마시며 웃었다.
민주는 법원 청사 지붕 위에 앉아 있는 비둘기 떼를 올려다보았다.
“그래, 참 평화롭네…… 아무도 싸우지 않고, 아무도 미워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민주의 입술 끝은 쓰게 뒤틀렸다.
갈등이 사라진 세상은, 생명이 사라진 사막과 무엇이 다른가.
피를 흘리지 않고, 상처를 주지 않는 대가로
인간은 스스로 종족의 대(代)를 끊어버리는 완벽한 안락사를 선택한 것이었다.
구청 문을 나서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평온함과 나른함만이 가득했다.
혼인 신고서가 사라진 거리 위로,
인류라는 거대한 나무의 마지막 잎새들이 소리 없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