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끝] 제13화 : 산부인과의 마지막 분만실 작가: 타무루 집필/수정일: 2026-10-21 09:56 ============================================================ # 제1권: 조용한 멸종 ## 제13화 ― 산부인과의 마지막 분만실 ### [기록 2060-04-15 : 관찰자의 일지] > 2060년 4월 15일, 대한민국 보건복지부는 서울 시내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종합병원 산부인과 분만실의 영구 폐쇄를 최종 승인했다. > 지난 3년간 해당 분만실에서 자연 분만이나 제왕절개로 태어난 신생아 수는 공식적으로 ‘0명’이었다. > 의과대학에서 산부인과 전공 과정은 완전히 폐지되었으며, 남아 있던 전문의들은 휴머노이드 바이오 펌프 정밀 관리의로 전직했다. >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한 이래 수십만 년 동안 꺼지지 않았던 분만실의 무영등(無影燈)이, 마침내 영원한 암흑 속으로 침몰했다. --- ### 1. 꺼지지 않던 불이 꺼질 때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본관 3층 구(舊) 산부인과 분만실. 일흔다섯 살의 노의사 조진형은 낡은 청진기를 목에 건 채 어둠 속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원형 무영등 아래, 차가운 스테인리스 수술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사십 년 전, 그가 젊은 레지던트였던 시절 이 수술대는 피와 양수, 땀과 비명으로 24시간 쉴 틈이 없던 생명의 최전선이었다. “힘주세요, 산모님! 아기 머리 보입니다! 조금만 더!” “으아아악!” “응애―! 응애―!” 산모의 살이 찢어지는 비명 뒤에 터져 나오던 그 경이로운 첫 울음소리. 태반의 비릿한 냄새와 탯줄을 가위로 자를 때 손끝으로 전해지던 묵직한 생명의 박동. 그 땀과 피범벅의 난장판이야말로 인류가 혹독한 지구 환경을 이겨내고 종족을 이어오던 가장 원초적인 힘이었다. 그러나 지금, 분만실 안에는 1데시벨의 소음도 없었다. 구석에 도열해 있는 열두 대의 인큐베이터는 전원 코드가 뽑힌 채 플라스틱 덮개 위로 뽀얗게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아기의 발도장을 찍던 붉은 인주통은 바싹 말라붙어 있었고, 유리 진열장 안의 탯줄 절단 가위에는 붉은 녹이 슬어 있었다. --- ### 2. 마지막 탯줄의 기억 조 의사는 벽면의 전원 스위치를 바라보았다. 보건복지부의 폐쇄 지침에 따라 오늘 자정부로 이 병동의 모든 의료 가스 밸브와 전기 공급이 영구 차단될 예정이었다. “조 박사님, 서류 정리 다 끝났습니다.” 젊은 의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의 가운 명찰에는 ‘산부인과’ 대신 ‘휴머노이드 생체 모사과’라는 직함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박물관에서 나왔습니다. 저 수술대랑 탯줄 가위, 국립중앙박물관 ‘인류 문명 소멸사 관’에 기증하기로 협약되었으니 지금 반출하겠다고 합니다.” “……가져가게.” 조 의사가 힘없이 손을 내저었다. 인부들이 들어와 수술대를 분해하고 탯줄 가위를 벨벳 완충재에 담는 모습을, 조 의사는 묵묵히 지켜보았다. 자신이 평생 동안 받아낸 수천 명의 생명들. 그 경이롭던 핏덩이들이 이제는 박물관 유리관 속에 박제되는 화석이 되어가고 있었다. --- ### 3. 클리닉으로 바뀐 병원 병원 1층 로비로 내려오자, 풍경은 딴세상처럼 화려하고 활기찼다. 과거 아픈 환자들과 우는 아이들로 북새통을 이루던 대기실은 최고급 호텔 라운지처럼 꾸며져 있었다. 벽면에 걸린 대형 간판이 네온빛을 뿜어냈다. **[삼진 메디컬-테크: 인공 피부 나노 오일 교환 및 관절 토크 정밀 클리닉]** **“당신의 가족과 자녀를 위한 가장 청결한 정기 점검.”** 안락한 가죽 소파에 앉은 노인들과 중년의 부부들은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들 곁에서 하얀 유니폼을 입은 엔지니어들이 인공 아동들의 관절에 윤활유를 주입하고, 인공 진피의 미세 스크래치를 레이저로 매끄럽게 복원하고 있었다. 피 한 방울 튀지 않았고, 고통의 신음 하나 들리지 않았다. 모든 것이 0.001밀리미터의 오차 없이 완벽하게 정돈된 무균실의 평화였다. --- ### 4. 거대한 영안실 조 의사는 병원 정문을 걸어 나왔다. 혜화동 대학로 거리에는 봄 햇살이 찬란하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거리는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했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은 우아했으며, 자동차들은 소음 하나 없이 전기로 미끄러졌다. 범죄도 없었고, 가난도 없었으며, 길거리에서 다투는 연인도 없었다. 완벽한 유토피아였다. 하지만 조 의사는 가슴을 부여안고 자리에 멈춰 섰다. 등골을 타고 흐르는 뼛속 시린 공포 때문이었다. 첫 울음소리가 사라진 세상. 새로운 피가 솟구치지 않는 도시. 이 눈부신 햇살 아래 펼쳐진 세상은 낙원이 아니었다. 인류라는 거대한 시체가 가장 우아한 수의(壽衣)를 차려입고 누워 있는,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정결한 ‘영안실(靈安室)’에 불과했다. 조 의사는 고개를 숙인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의 귓가에는 수십 년 전 분만실에서 아기들이 질러대던 그 거칠고 원초적인 울음소리가 환청처럼, 슬픈 진혼곡처럼 아득하게 메아리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