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끝] 제12화 : 자라지 않는 아이, 자라는 섀시 작가: 타무루 집필/수정일: 2026-10-21 09:56 ============================================================ # 제1권: 조용한 멸종 ## 제12화 ― 자라지 않는 아이, 자라는 섀시 ### [기록 2055-11-12 : 관찰자의 일지] > 생체 세포의 끝없는 분열은 필연적으로 질병과 노화, 그리고 불치병이라는 죽음의 그림자를 동반한다. > 그러나 인공 아동의 ‘성장’은 완벽한 수학적 통제 아래서 이루어졌다. > 2055년, 전 세계에 설립된 ‘아동 섀시 성장 센터’는 아이를 키우는 방식을 산업 공정으로 완성했다. > 기억과 감정은 무선 클라우드에 안전하게 보존된 채, > 3년 주기로 10센티미터 더 길어진 티타늄 대퇴골과 더 단단한 흉골 섀시로 코어가 옮겨졌다. > 부모들은 소아과 병원 대기실의 피 말리는 불안 대신, 정비 센터 라운지의 커피 한 잔으로 아이의 완벽한 성장을 구매했다. --- ### 1. 세 번째 생일, 10센티미터의 기적 김현수(64세)와 강은하(60세)가 다인을 입양한 지 어느덧 3년이 흘렀다. 방학동 집 안은 다인의 웃음소리로 지난 3년 내내 화사했다. 다인은 은하가 읽어주는 동화책을 들으며 눈을 반짝였고, 현수가 퇴근하면 현관까지 달려 나와 품에 안겼다. 하지만 일곱 살 수준의 섀시(신장 110센티미터)로 설계된 다인의 옷은 3년이 지나도 조금도 작아지지 않았다. “엄마, 나도 저 언니처럼 키 크고 싶어.” 텔레비전 속 애니메이션을 보던 다인이 은하의 옷자락을 잡고 보챘다. 은하는 다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현수와 눈을 맞추었다. 드디어 때가 된 것이었다. --- ### 2. 정비 베드 위의 요람 다음 날 오전, 서초동 ‘삼진 아동 하드웨어 케어 센터’ 3층 정밀 시술실. 기존의 소아과 병원과는 달리, 이곳에는 소독약 냄새나 아이들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없었다. 은은한 아로마 향과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방 한가운데에 순백의 유압식 시술 베드가 놓여 있었다. 다인은 얌전하게 베드 위에 누워 현수와 은하의 손을 꼭 쥐고 있었다. “다인아, 무서워할 거 하나도 없단다. 닥터 삼촌이 키 크는 마법을 부려줄 거야.” 흰 가운을 입은 시니어 하드웨어 엔지니어가 다정하게 미소 지었다. 엔지니어가 태블릿 화면에서 [절전 및 코어 백업] 명령어를 슬라이드하자, 다인의 맑은 눈꺼풀이 스르륵 감겼다. 고통도, 마취 주사의 공포도 없는 완벽하고 평온한 수면 모드였다. *치익.* 시술자가 특수 릴리즈 툴로 다인의 등판 견갑골 사이의 래치를 해제하자, 티타늄 흉곽이 부드럽게 열리며 은빛으로 빛나는 사각형 코어 유닛이 모습을 드러냈다. 3년 동안 은하와 현수의 사랑을 먹고 자란 다인의 모든 기억, 웃음, 단어, 감정 파라미터가 압축되어 있는 뉴로모픽 두뇌였다. 엔지니어는 핀셋으로 코어 유닛을 분리하여 옆 작업대에 놓인 새로운 몸체 안으로 밀어 넣었다. 새로운 몸체는 신장 122센티미터, 열 살 아동의 골격 비율을 가진 ‘C-Child 4세대 확장 섀시’였다. 티타늄 뼈대는 이전보다 굵고 단단해졌으며, 피부는 조금 더 성숙한 광택을 띠고 있었다. *찰칵. 위잉―* 새로운 가슴 덮개가 닫히고, 전원 동기화 비프음이 맑게 울렸다. 걸린 시간은 단 45분이었다. --- ### 3. 엄마, 나 키 컸어요! “시스템 부팅 시작합니다.” 엔지니어의 말이 끝나자마자, 베드 위의 아이가 긴 속눈썹을 깜박이며 눈을 떴다. 다인은 천천히 상체를 일으키더니 자신의 길어진 두 팔과 다리를 신기한 듯 내려다보았다. 베드에서 사뿐히 뛰어내린 다인은 은하의 허리춤까지 훌쩍 자라 있었다. “엄마! 아빠! 나 키 컸어요! 진짜로 컸어요!” 다인이 까치발을 들며 은하의 품으로 와락 뛰어들었다. 은하는 품에 안긴 묵직한 무게감과 길어진 아이의 팔길이를 느끼며 전율했다. 성장통도 없었다. 밤마다 다리가 아프다고 울며 보채지도 않았고, 뼈에 영양이 부족해 구루병을 앓지도 않았다. 세포 분열이 아니기에 소아 백혈병도, 난치성 종양도 생겨날 수 없었다. 기술은 인간의 불완전한 유전자 속에 각인되어 있던 모든 질병의 저주를 완벽하게 거세해 버린 것이었다. “그래, 우리 다인이…… 정말 예쁘게 잘 컸구나.” 은하는 눈물을 글썽이며 다인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 ### 4. 불완전한 생명에 대한 경멸 집으로 돌아오는 길, 현수는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서울의 거리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과거 그 험난했던 시절, 인간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 겪어야 했던 수많은 비극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아이가 아플까 봐 밤잠을 설쳤던 부모들, 불치병에 걸린 자식을 안고 병원 복도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던 가난한 이웃들, 사춘기의 방황으로 부모의 가슴을 난도질하던 자식들…… ‘인간은 왜 그토록 오랫동안 고통스러운 자연의 번식에 매달렸던 것일까.’ 현수는 조용히 뒷좌석을 돌아보았다. 새로운 섀시를 장착한 다인은 창밖의 풍경을 보며 맑은 목소리로 동요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단 1초의 고통도, 단 하나의 결함도 없는 완벽한 행복. 인간은 이제 살아있는 생명을 낳는 행위를 ‘야만적이고 무책임한 도박’으로 경멸하기 시작했다. 완벽하게 통제되는 기계의 아이들이 세상을 가득 채우는 동안,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했던 생명의 자궁은 영원한 휴업 상태로 접어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