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끝] 제11화 : 가족 디자인 센터 작가: 타무루 집필/수정일: 2026-10-21 09:56 ============================================================ # 제1권: 조용한 멸종 ## 제11화 ― 가족 디자인 센터 ### [기록 2052-09-08 : 관찰자의 일지] > 2050년대 초반, 삼진-글로벌이 설립한 ‘가족 디자인 센터(Family Design Center)’는 > 과거의 산부인과와 입양 기관을 통합하여 완전히 새로운 인류학적 패러다임을 열었다. > “원하는 성별, 원하는 지능, 부모의 장점만을 추출한 유전형질 시뮬레이션.” > 입양 신청자는 복잡한 적격 심사 대신 3D 스캔 부스에 들어가 사진을 찍고 신용카드 한도를 조회하면 되었다. > 열 달 동안 입덧을 겪을 필요도, 출산의 끔찍한 고통을 감내할 필요도 없었다. > 인류는 마침내 ‘생물학적 번식’이라는 야만적이고 피비린내 나는 과정을 가장 청결한 쇼핑으로 치환하는 데 성공했다. --- ### 1. 백색의 전당 서울 강남구 삼성동, 구(舊) 삼진 본사 사옥 1층에 문을 연 ‘가족 디자인 센터’ 로비. 순백의 대리석 바닥 위로 클래식 피아노 선율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벽면을 따라 설치된 수십 개의 투명 유리 캡슐 안에는, 갓난아기부터 서너 살, 일곱 살에 이르는 인공 아동들이 새근새근 숨을 쉬며 잠들어 있었다. 아이들의 가슴은 실제 폐가 움직이듯 완벽한 리듬으로 오르내렸고, 뺨에는 갓 목욕을 마친 아기 특유의 우유 냄새가 향수처럼 은은하게 분사되고 있었다. 환갑을 훌쩍 넘긴 김현수(61세)와 강은하(57세)는 서로의 손을 꼭 쥔 채 상담실 문을 열었다. 상담 책상 너머에서 말끔한 정장 차림의 AI 수석 디자이너가 미소로 부부를 맞았다. “김현수 고객님, 강은하 고객님. 두 분의 오랜 꿈을 이뤄드릴 수 있게 되어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디자이너가 책상 위의 홀로그램 프로젝터를 작동시켰다. 공중에 현수와 은하의 젊은 시절 사진 수십 장이 떠오르더니, 복잡한 유전체 시뮬레이션 알고리즘을 거쳐 3차원 아동 형상으로 합성되기 시작했다. --- ### 2. 우리가 낳지 못한 아이 *쉬잉―* 빛의 입자들이 뭉치며 홀로그램 화면에 완성된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현수의 짙은 눈썹과 은하의 맑은 눈망울, 그리고 은하가 젊었을 때 지녔던 특유의 복스러운 콧날을 쏙 빼닮은 대여섯 살짜리 여자아이였다. “어머나……” 은하가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으며 눈물을 글썽였다. 젊은 시절, 공장 일과 생활고에 치여 차마 꿈꾸지 못했던 ‘만약 우리에게 아이가 있었다면’이라는 상상이, 빛의 홀로그램이 되어 눈앞에서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고객님, 아이의 기본 모델명은 C-Child 3세대입니다.” 디자이너가 태블릿을 넘기며 설명했다. “체온은 36.8도로 일반 성인보다 약간 높게 설정되어 있어 안았을 때 아기 특유의 포근함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신경망은 아동 심리학 데이터 5억 건을 학습하여, 부모의 칭찬에 수줍어하고 가끔은 귀여운 투정도 부리지만, 절대로 통제 불가능한 떼를 쓰거나 공격성을 드러내지 않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성장 섀시 플랜 15년형을 선택하시면, 3년마다 키와 골격을 10센티미터씩 완벽하게 교체해 드립니다.” “……얼마나 걸립니까?” 현수가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배합 공정과 성격 튜닝에 48시간 걸립니다. 이틀 뒤 오후에 오시면, 품에 안고 집으로 가실 수 있습니다.” 열 달의 임신도, 진통도, 분만실의 피비린내도 없었다. 단 이틀의 시간과 신용카드 결제 승인 문자 한 통으로, 두 사람은 평생 동안 가져보지 못했던 ‘부모’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 ### 3. 집으로 온 다인 이틀 뒤 저녁, 방학동 아파트. 현관문이 열리고, 은하는 품에 묵직하고 따스한 온기를 안은 채 거실로 들어섰다. 분홍색 니트 카디건을 입은 아이는 은하의 품에 꼭 안겨 있었다. 무게 18킬로그램. 대여섯 살 아이의 묵직한 무게감이었다. 은하가 거실 카펫 위에 아이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자, 아이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더니 커다란 눈망울이 스르륵 열렸다. 아이의 시선이 현수와 은하를 번갈아 응시했다. 내장된 안면 인식 센서가 두 사람의 얼굴을 ‘영구 관리자(부모)’로 등록하는 비프음이 아이의 귓속 깊은 곳에서 희미하게 울렸다. “……엄마? 아빠?” 아이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맑은 목소리가 거실의 정적을 단숨에 깨뜨렸다. 은하는 털썩 주저앉아 아이를 와락 끌어안았다. 아이의 뺨에서 느껴지는 보드라운 피부와 따스한 온기, 그리고 아이의 작은 두 팔이 은하의 목을 감싸 안는 순간, 은하는 참아왔던 통곡을 터뜨렸다. “그래, 다인아…… 내가 네 엄마야. 엄마가 여기 있어.” 현수 역시 눈시울을 붉히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 아이의 가슴속에 돌아가는 것은 심장이 아니라 나노 펌프였고, 뼈마디는 쇳가루를 녹여 만든 티타늄 합금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세상 그 어떤 혈육보다 더 완벽하게 부모의 얼굴을 닮았고, 영원히 부모의 곁을 떠나지 않을 사랑이 여기 있는데. --- ### 4. 닫히는 자연의 문 그 시각, 강태식(70세)은 세운상가 옥상에서 커피를 마시며 서울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거리마다 ‘가족 디자인 센터’의 커다란 쇼핑백을 든 은발의 부부들이 환한 얼굴로 아이들의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었다. 진짜 인간 아기가 태어나지 않는 세상. 모든 가정이 공장에서 조립된 무결점의 천사들로 채워지는 세상. 인류는 스스로의 자궁을 비우고, 그 자리에 기계의 요람을 올려놓았다. 고통스러운 탄생도 없고, 비극적인 질병도 없으며, 배신과 불효도 없는 완벽한 지상낙원. 인간은 그렇게, 자신들의 손으로 신(神)의 영역을 침범하여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자멸의 방식을 완성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