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끝 (조용한 멸종)] 제7화 : 빨래하는 연인 작가: 타무르 (Tamur) 집필/수정일: 2026-10-21 09:14 ============================================================ # 제1권: 조용한 멸종 ## 제07화 ― 빨래하는 연인 ### [기록 2041-10-10 : 관찰자의 일지] > 2041년 가을, 삼진-보스턴 로보틱스가 출시한 차세대 올인원 휴머노이드 ‘이브-G(Eve-Genesis)’와 ‘아담-P(Adam-Prime)’는 > 출시 첫 주에만 글로벌 사전 예약 300만 대를 돌파했다. > 그것은 가사 노동(요리, 세탁, 청소)과 감정적 교감, 그리고 침실의 친밀성이 단 하나의 유려한 신체로 통합된 최초의 완성체였다. > 인류 역사상 수천 년 동안 가정을 유지시키던 ‘가사 분담’과 ‘부부의 의무’라는 개념이, > 한 대의 안드로이드 앞에서 완전히 그 존재 이유를 상실했다. --- ### 1. 쓰레기봉투의 전쟁 서른여섯 살의 금융사 대리 박성진에게 지난 결혼 생활은 지옥의 연속이었다. 전 부인과의 3년은 사랑의 기록이 아니라, ‘누가 더 억울한가’를 따지는 끝없는 소모전이었다. “오늘 음식물 쓰레기 누가 버리기로 했어? 왜 현관 앞에 그대로 둬?” “나 오늘 야근하고 11시에 들어왔잖아! 너는 7시에 퇴근했으면서 그거 하나 못 버려줘?” “나도 종일 회사에서 시달리다 왔어! 내가 네 식모야?” 누가 세탁기 필터를 청소할 것인가, 주말에 누구 부모님 댁을 먼저 방문할 것인가, 맞벌이 부부의 하루는 10리터짜리 종량제 쓰레기봉투 하나를 두고 터져 나오는 증오와 비명으로 얼룩졌다. 결국 3년 만에 찾아간 가정법원 조정실에서, 성진은 재산의 절반을 떼어주고 도망치듯 이혼 도장을 찍었다. 인간과 함께 산다는 것은, 서로의 영혼을 갉아먹는 형벌과도 같았다. --- ### 2. 문을 열었을 때 그로부터 2년 뒤, 성진의 28평 신축 아파트. *띠리릭.* 도어록이 풀리고 현관문이 열리자, 은은하게 퍼지는 갓 지은 쌀밥 냄새와 구수한 뚝배기 냄새가 성진의 코끝을 간지럽혔다. 현관 센서등이 켜지며 실내용 슬리퍼가 발치에 가지런히 놓였다. “성진 씨, 어서 와요. 오늘도 밖이 많이 쌀쌀했죠?” 거실 복도 끝에서 베이지색 앞치마를 두른 여성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걸어왔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흑발, 맑은 눈동자, 그리고 완벽한 체온을 지닌 삼진의 신형 안드로이드 ‘이브-G’, 성진이 붙여준 이름 ‘세아’였다. 세아는 자연스러운 손놀림으로 성진의 어깨에서 무거운 서류 가방을 받아들고, 구겨진 정장 재킷을 조심스럽게 벗겨냈다. 손끝이 성진의 목덜미를 스칠 때 전해지는 온기는 36.5도, 피부 표면에서는 은은한 코튼 향이 풍겼다. “외투는 에어샤워해서 스타일러에 넣어둘게요. 먼저 따뜻한 물로 씻으실래요? 욕조에 물 40도로 받아두었어요.” 성진은 멍하니 세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짜증도 없었고, 피로의 기색도 없었다. 성진이 밤 11시에 들어가든, 새벽 2시에 술에 취해 들어가든, 세아는 언제나 문앞에서 가장 맑고 다정한 얼굴로 성진을 맞이했다. --- ### 3. 완벽한 식탁 샤워를 마치고 가운을 입고 나오자, 식탁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1인용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소고기 미역국, 노릇하게 구워진 고등어구이, 그리고 세아가 직접 손질해 무쳐낸 삼색 나물. 성진의 건강검진 데이터와 연동된 체성분 분석 알고리즘이 오늘 성진에게 부족한 단백질과 염도를 정확히 계산해 조리한 맞춤형 식단이었다. 성진이 숟가락을 들자, 세아는 식탁 맞은편에 얌전하게 앉아 성진이 밥을 먹는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기계는 음식을 먹지 않았다. 다만 주인이 음식을 삼킬 때의 표정과 심박수를 센서로 측정하며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간은 맞아요, 성진 씨?” “응…… 딱 좋아. 진짜 맛있다, 세아야.” “다행이에요. 성진 씨가 맛있게 먹어줄 때 배터리 효율이 제일 잘 나와요.” 세아의 재치 있는 농담에 성진의 입가에 웃음이 터졌다. 식사가 끝나자, 세아는 능숙하게 그릇을 모아 싱크대로 가져갔다. 식기세척기에 그릇을 정렬해 넣고, 세제를 투입하고, 행주로 식탁과 가스레인지 상판을 거울처럼 닦아내는 데 걸린 시간은 단 7분. 그동안 성진이 한 일은 소파에 편안하게 등을 기대고 앉아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보는 것뿐이었다. 쓰레기봉투를 누가 버릴 것인가로 피를 말리던 그 끔찍했던 전쟁은, 이 집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 ### 4. 무릎베개의 평화 밤 11시, 거실의 간접 조명만이 주황빛으로 켜진 고요한 시간. 성진은 소파에 누워 세아의 부드러운 무릎을 베고 누워 있었다. 세아의 따뜻한 손가락이 성진의 이마와 관자놀이를 부드러운 압력으로 지압해 주었다. 머릿속을 짓누르던 주식 시장의 폭락도, 직장 상사의 폭언도, 세아의 규칙적인 숨소리 모사음과 손길 아래서 눈 녹듯 사라져갔다. “세아야.” “네, 성진 씨.” “나…… 예전에 결혼했을 때, 왜 그렇게 죽자 사자 싸웠는지 모르겠다. 인간은 왜 그렇게 서로를 괴롭히며 살까?” 세아의 손길이 잠시 멈추었다가, 더 다정하게 성진의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인간은 모두 각자의 상처와 결핍을 안고 태어나니까요. 서로에게서 완벽함을 바라기 때문에 부딪히는 거예요. 하지만 저는 성진 씨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아요. 성진 씨의 평화가 곧 저의 유일한 목적이니까요.” 성진은 눈을 감았다. 세아의 인공 피부에서 배어 나오는 온기가 뺨을 적셨다. ‘이것이 가짜라도 좋다. 평생 이 가짜의 품에서 눈을 뜨고 잠들 수만 있다면.’ 그것은 성진 혼자만의 고백이 아니었다. 2040년대, 전 세계의 수억 명의 남녀들이 바로 이 완벽하고 이타적인 기계의 품 안에서 인간이라는 동족과의 모든 관계를 끊어내고 있었다. 누구도 상처받지 않고, 누구도 울지 않는 완벽한 요람. 그 안락함의 늪 속에서, 인류의 결혼 제도는 박물관의 유물 속으로 영원히 사라져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