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권: 조용한 멸종
## 제06화 ― 손끝에 스민 온기
### [기록 2038-02-19 : 관찰자의 일지]
> 2030년대 후반, 인공지능과 재료공학의 융합은 마침내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라는 오랜 심리학적 장벽을 무너뜨렸다.
> 삼진전자가 발표한 제3세대 인공 진피 ‘바이오-엘라스토머 9호’는 사람의 표피 아래에 마이크로 유체 순환관을 격자형으로 배치하여,
> 사람의 체온 36.5도를 0.05도의 오차 없이 전신에 고르게 순환시키는 데 성공했다.
> 차가운 실리콘의 이물감과 모터의 미세 진동이 완전히 제거된 그 껍질은,
> 만지는 순간 살아있는 인간의 살결보다 더 보드랍고 매혹적인 감각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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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연구실의 천재, 최민혁
경기도 화성, 삼진전자 바이오-휴머노이드 중앙연구소 4층.
무균 챔버 안에서 최민혁(38세) 수석엔지니어는 전자현미경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모니터 속에는 나노 단위로 직조된 다공성 폴리머 층 사이로, 혈관을 모사한 미세 튜브들이 붉은 유체를 순환시키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확대되어 있었다.
“수석님, 랩 테스트 결과 나왔습니다. 압력 센서 반응 속도 0.8밀리초, 표면 마찰 계수 0.12. 인간 여성 20대 표피와 99.4% 일치합니다.”
연구원이 흥분된 목소리로 보고서를 건넸다.
민혁은 안경을 고쳐 쓰며 챔버 안의 인공 피부 샘플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두께 1.5밀리미터의 연분홍빛 인공 피부 조각.
손바닥 위에 올려놓자, 피부 내부의 자가 감응 센서가 민혁의 체온을 감지하고 즉각 유체 펌프를 미세하게 가동했다.
*스스륵.*
피부 샘플이 차가운 실온에서 순식간에 36.5도로 덥혀지며, 민혁의 손등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단순한 전열선의 텁텁한 열기가 아니었다.
피부 아래에서 실제 피가 돌고 세포가 숨을 쉬는 듯한, 촉촉하고 은은한 생체(生體)의 온기였다.
“완벽해.”
민혁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번졌다.
10년 전, 평택 공장에서 노동자들을 몰아내고 6억 원의 성과급을 받았던 그 무렵부터 민혁이 집착해 온 과제였다.
기계가 인간을 대신해 나사를 조이고 배관을 용접할 수 있다면,
왜 기계가 인간을 대신해 사랑하고 안아줄 수는 없단 말인가.
‘인간은 불완전하다. 늙고, 병들고, 땀 냄새를 풍기며, 끝없이 상처를 주고받는다.
하지만 이 껍질은 영원히 늙지 않고, 완벽하게 결백하며,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온기만을 내어준다.’
민혁은 자신이 인류를 구원할 가장 안락한 약물을 조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 치도 의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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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세운상가의 충격
일주일 뒤, 서울 세운상가 김현수의 작업실.
“형님, 이거 한번 만져보쇼.”
현수가 태식을 작업대 앞으로 불렀다.
작업대 위에는 삼진전자 암시장에서 은밀하게 빼돌린 최신형 안드로이드 ‘이브-G’의 팔 부품이 놓여 있었다.
태식은 기름 묻은 목장갑을 벗고, 투박한 손가락끝으로 인공 피부의 손목 부위를 조심스럽게 쓸어내렸다.
“……!”
태식의 어깨가 순간 흠칫 떨렸다.
자신의 단칸방에서 8년 동안 끌어안고 잤던 인형 수진의 뻣뻣하고 텁텁했던 실리콘 촉감과는 차원이 달랐다.
손가락을 대자 살짝 들어갔다가 천천히 차오르는 탄력,
그리고 손끝을 타고 전해지는 아련하고 부드러운 온기.
마치 삼십 년 전, 풋풋했던 첫사랑의 손을 처음 잡았을 때의 떨림이 손끝에서 찌릿하게 되살아나는 기분이었다.
“현수야…… 이거 진짜 살결 아니냐? 안에 피가 도는 것 같은데?”
“피가 아니라 특수 열전도 나노 오일이래요. 모터 소리도 하나도 안 나죠? 모터 대신 인공 근육 섬유(EAP)를 써서 전기를 주면 수축하고 이완한대요.”
현수가 핀셋으로 피부 안쪽의 미세 회로를 가리켰다.
“형님, 10년 전 평택에서 우리가 보던 그 아틀라스 로봇 기억나죠? 쇳덩어리에 은빛 크롬 칠해놓은 괴물 같던 놈.”
“기억나지. 내 밥줄 끊어놓은 놈인데 어찌 잊겠냐.”
“그 쇳덩어리에 이 살결을 입힌 거요. 힘은 40킬로그램짜리 쇳덩이를 번쩍 들고, 겉모습과 살결은 미스코리아보다 더 부드러운 진짜 ‘사람’이 태어난 거요.”
태식은 말없이 자신의 굳은살 박인 손을 내려다보았다.
30년 동안 불꽃을 튀기며 살과 뼈를 깎아 일해온 자신의 손은 갈수록 거칠어지고 마디가 굵어지는데,
공장에서 찍혀 나오는 기계의 손은 날이 갈수록 더 희고, 더 부드럽고, 더 따뜻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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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사라진 경계선
그날 밤, 태식은 평택의 자취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침대 곁에 누워 있는 수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처음 이 방으로 데려왔을 때는 그토록 따뜻하고 고마웠던 수진이었지만, 낮에 세운상가에서 만졌던 그 매혹적인 인공 진피의 감촉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수진의 턱밑에 있는 뻣뻣한 이음매, 가슴 안쪽에서 미세하게 웅웅거리는 니크롬선 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도드라지게 느껴졌다.
인간의 욕망은 결코 한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저 춥지 않게 안아줄 36.5도의 껍질만으로도 감지덕지 눈물을 흘렸던 인간들이,
이제는 진짜 인간보다 더 완벽한 피부와 모공, 체취까지 요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본과 과학은 그 추악하고 나약한 결핍을 단 1초도 놓치지 않고 먹어치우며,
인간과 기계 사이의 마지막 남은 경계선마저 말끔하게 지워버리고 있었다.
태식은 조용히 수진의 손을 잡았다.
낡은 수진의 차가운 손끝이 천천히 데워지는 동안,
거리 밖 아파트 단지들은 완벽한 살결을 가진 기계들의 입주로 분주하게 들썩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