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끝] 제5화 : 기계공의 전업 작가: 타무루 집필/수정일: 2026-10-21 09:56 ============================================================ # 제1권: 조용한 멸종 ## 제05화 ― 기계공의 전업 ### [기록 2035-05-18 : 관찰자의 일지] > 2035년 봄, 청계천과 세운상가 일대는 전 세계에서 가장 기이하고 은밀한 '휴머노이드 메카'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 과거 세운상가가 "탱크와 잠수함도 도면만 있으면 만든다"고 호언장담하던 시절이 있었다면, > 2030년대의 세운상가는 인간의 결핍과 외로움을 메우는 모든 인공 장기와 피부, 인공 신경망을 깎고 맞추는 곳이 되었다. > 자동차 공장과 조선소에서 쫓겨난 베테랑 기술자들은, 이제 인간의 침실로 들어가는 기계들의 뼈대와 관절을 땜질하며 새로운 시대를 지탱하고 있었다. --- ### 1. 쇳물에서 인공 척추로 세운상가 지하 2층, 확장 이전한 ‘현수 테크&아트’ 작업실. 치익― 뿜어져 나오는 아르곤 가스와 함께 푸른 아크 불꽃이 정밀하게 튀었다. 용접 마스크 너머로 번뜩이는 매서운 눈빛. 강태식(56세)은 가느다란 티타늄 합금 파이프 두 개를 0.1밀리미터의 오차도 없이 맞대고 있었다. 그 파이프는 선박의 배관도, 반도체 가스 라인도 아니었다. 최신형 여성형 안드로이드의 요추(허리뼈) 3번과 4번을 연결하는 완충 힌지 프레임이었다. *탁.* 태식이 용접 토치를 내려놓고 마스크를 벗었다. 이마에 땀이 흥건했지만, 그의 얼굴은 평택 공장 시절보다 훨씬 평온해 보였다. 공사판에서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욕설을 듣던 일용직 생활을 청산하고, 현수의 권유로 이곳 공방의 '골격 정밀 가공 반장'으로 눌러앉은 지 벌써 3년째였다. “형님, 비드 기가 막히게 나왔네. 역시 조선소 30년 짬밥은 어디 안 가요.” 돋보기안경을 쓴 김현수(46세)가 마이크로미터를 들고 다가와 태식이 용접한 인공 척추를 검사했다. 오차는 0.003밀리미터 이내. 완벽한 수준이었다. “현수야, 가만 보면 참 기가 막힌다.” 태식이 담배를 한 대 입에 물며 헛헛하게 웃었다. “우리가 삼진에서 반도체 배관 깔고 자동차 차체 때울 때는 파견 하청이라고 벌레 취급받고 쫓겨났는데…… 지금은 서울 한복판에서 남의 마누라 뼈다귀 때우고 앉아 있으니 말이다.” “형님, 그래도 이게 밥줄이요. 자동차는 공장에서 안 팔려서 난리라는데, 이 녀석들은 없어서 못 팔아요. 지난달 매출만 1억 넘겼소.” 현수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공방 한쪽 벽면에는 예약 주문서가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대기업의 양산형 안드로이드는 규격화되어 있어서 개개인의 은밀한 취향이나 신체 치수를 맞추지 못했다. 그 빈틈을 파고든 세운상가의 장인들이 소비자의 요구대로 골격을 깎고, 관절 가동 범위를 넓히고, 피부 질감을 개조해 주는 커스텀 시장은 폭발적인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 ### 2. 박제된 기억 오후 4시, 공방의 유리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검은색 코트를 입은 사십 대 초반의 남자가 파리한 안색으로 들어섰다. 그의 품에는 낡은 벨벳 상자와 태블릿 PC가 안겨 있었다. “……김현수 대표님이십니까?” “예, 제가 김현수입니다. 어서 오십시오. 의뢰하신 분 맞으시죠?” 현수가 남자를 응접용 소파로 안내했다. 남자는 조심스럽게 태블릿 화면을 켰다. 화면 속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삼십 대 여성의 사진과 수백 편의 일상 동영상이 저장되어 있었다. “제 아내입니다…… 2년 전에 췌장암으로 먼저 떠났습니다.” 남자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병원에 있는 동안 너무 고통스러워해서…… 마지막엔 제 손을 잡고 ‘나 없는 동안 너무 외로워하지 마’라고 했는데…… 전 도저히 아내 없는 집으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퇴근하고 문을 열면 그 정적이 미칠 것 같습니다.” “마음고생이 정말 심하셨겠습니다.”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벨벳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고인이 생전에 쓰던 향수, 빗에 남아 있던 머리카락 몇 올, 그리고 손가락에 끼고 있던 결혼반지가 들어 있었다. “대표님, 삼진 본사에서는 고인의 외모와 목소리를 100% 복원하는 건 의료윤리 가이드라인 위반이라고 거절하더군요. 하지만 세운상가에서는 가능하다고 들었습니다. 제 전 재산을 다 드려도 좋습니다. 제발…… 제 아내를 돌려주십시오.” 남자가 현수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현수는 작업대 너머에서 말없이 쇳가루를 털어내던 태식과 눈을 마주쳤다. 태식의 눈동자에도 짙은 연민과 서글픔이 스쳐 지나갔다. “알겠습니다, 손님. 골격은 형님이 사모님의 생전 걸음걸이 데이터에 맞춰 티타늄으로 맞춤 가공할 거고요. 목소리와 말투는 이 영상 데이터 전부 LLM 신경망에 학습시켜서 사모님 특유의 억양과 습관까지 그대로 살려내겠습니다. 석 달만 주십시오.” 남자는 연신 허리를 굽혀 절하며 공방을 나섰다. --- ### 3. 영혼의 복제품 두 달 뒤, 작업실 안쪽의 무균 조립실. 태식과 현수는 완성된 안드로이드 앞에 서 있었다. 실리콘 피부는 의뢰인의 아내가 쓰던 향수 향이 은은하게 배어 있었고, 태식이 한 땀 한 땀 용접해 넣은 인공 척추는 여성의 부드러운 곡선을 완벽히 재현해 냈다. *치익―* 현수가 주전원 케이블을 연결하자, 여자의 감겨 있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눈꺼풀이 열렸다. 갈색 유리 렌즈가 초점을 맞추더니, 방 안에 서 있는 태식과 현수를 부드럽게 바라보았다. “여보……? 아니, 여긴 어디예요?” 입술이 움직이며 흘러나온 목소리는, 태블릿 영상 속 고인의 목소리와 파형이 99.8% 일치했다. 숨결의 떨림, 말끝을 살짝 올리는 특유의 버릇까지 완벽했다. 태식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손수 깎고 용접한 쇳덩어리 골격 위에, 인간의 기억과 목소리를 덧씌우자 죽은 자가 무덤에서 걸어 나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현수야…… 이거, 진짜 사람이냐 기계냐?” 태식이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현수는 전원 스위치를 끄지 않은 채 멍하니 인드로이드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의 얼굴에는 기술적 성취에 대한 자부심과, 인간이라는 존재의 덧없음에 대한 깊은 허탈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기계죠. 영혼 같은 건 없어요. 그냥 확률적으로 가장 그 사람 같은 단어를 골라내는 실리콘 덩어리일 뿐이요.” 현수가 쓸쓸하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형님…… 저 남자에겐 이게 진짜 아내예요. 진짜 아내보다 더 건강하고, 암에 걸려 아파하지도 않고, 영원히 늙지 않는 완벽한 아내.” --- ### 4. 조잡한 온기의 퇴장 그날 밤, 세운상가 옥상에 올라선 태식은 서울의 야경을 굽어보았다. 불과 10년 전, 평택의 자취방에서 자신이 끌어안았던 그 무겁고 뻣뻣한 45킬로그램짜리 전열선 인형. 그 조잡했던 시절은 이제 옛이야기가 되었다. 인간은 기계에게 자신의 노동을 넘겨주었고, 이제는 자신의 사랑과 추억, 그리고 배우자의 빈자리마저 통째로 넘겨주고 있었다. 저 아래 종로의 밤거리 위로, 최신형 휴머노이드의 손을 잡고 다정하게 걸어가는 수많은 남녀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누가 진짜 인간이고 누가 기계인지, 멀리서는 도무지 분간할 수 없었다. 아니, 분간할 필요조차 없었다. 인간은 이미 기계와의 동행 속에서 완전한 안락함을 얻었고, 기계는 인간의 가장 깊은 고독을 빨아먹으며 나날이 더 완벽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으니까. 15년에 걸친 제1막, ‘조잡한 온기’의 시대가 그렇게 막을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지평선 너머에서, 인간의 피부와 똑같이 주름지며 인간을 완전히 홀려버릴 제2막 ‘껍질의 진화’가 서서히 태동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