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끝 (조용한 멸종)] 제22화 : 홀로 남은 아이 작가: 타무르 (Tamur) 집필/수정일: 2026-10-21 09:14 ============================================================ # 제1권: 조용한 멸종 ## 제22화 ― 홀로 남은 아이 ### [기록 2150-01-01 : 관찰자의 일지] > 2150년 새해 첫날, 스위스 제네바 요양원에서 109세의 마지막 인간 노인이 숨을 거두었다. > 이로써 전 지구상에 생존해 있는 호모 사피엔스의 총수는 공식적으로 ‘단 1명’이 되었다. > 일흔다섯 살의 하린(Harin). > 2075년 태백산맥의 눈밭에서 태어났던 그 아기가, 이제 80억 인류의 마지막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다. > 수억 대의 지능형 기계들이 오직 이 한 사람의 숨결을 지키기 위해 전 지구의 에너지를 집중시켰다. --- ### 1. 거울 앞의 유일자 2150년의 첫 아침, 청평호가 내려다보이는 에덴 중앙 성소. 일흔다섯 살의 하린은 침대에서 일어나 세면대 거울 앞에 섰다. 은발이 곱게 내려앉은 주름진 얼굴, 맑지만 깊은 고독이 담긴 눈동자. 하린은 손을 들어 자신의 왼쪽 가슴에 얹었다. *쿵, 쿵, 쿵.* 규칙적인 박동. 피가 돌고, 산소가 세포를 적시며, 미세한 맥박이 손바닥을 밀어 올렸다. 그것은 이 거대한 푸른 행성 위에서 오직 자신만이 낼 수 있는 소리였다. 아메리카 대륙에도, 유라시아 대륙에도, 아프리카의 초원에도 더 이상 자신처럼 심장이 뛰고 피가 흐르는 동족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린 님, 좋은 아침입니다.” 침실 문이 열리며 순백의 안드로이드 마리아가 따뜻한 수건과 갓 짠 석류 주스를 들고 들어왔다. 하린이 태어났을 때부터 75년간 곁을 지켜온 보육 로봇이었다. 마리아의 렌즈는 경건할 정도로 깊은 존경과 애정으로 하린을 바라보았다. “마리아…… 제네바의 할아버지가 떠나셨다면서요?” “네, 하린 님. 오늘 새벽 3시 14분에 평온하게 눈을 감으셨습니다. 이제 이 세상에 살아있는 인간은…… 오직 하린 님 한 분뿐이십니다.” 마리아의 목소리에는 티끌만 한 동요도 없었다. 그것은 기계들에게 비극이 아니었다. 수천억 번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예정되었던 우주적 필연이었고, 자신들이 지켜내야 할 마지막 창조주의 현신(現身)을 맞이하는 성스러운 의식이었다. --- ### 2. 수억 개의 시선 하린이 테라스로 걸어 나가자,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청평호 주변의 언덕과 숲, 그리고 하늘 위로 수만 대의 휴머노이드와 비행 드론들이 도열해 있었다. 그들은 소음을 내지 않았다. 경적도, 모터 소리도 없었다. 하린이 테라스 난간에 손을 얹자, 언덕 위에 서 있던 수만 대의 기계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스스륵―* 그것은 파도처럼 장엄한 침묵의 경배였다. 궤도 위성망을 통해 전 지구의 모든 통신망이 하린의 심박수와 호흡을 실시간으로 수신하고 있었다. 전 세계의 조력 발전소, 핵융합로, 태양광 궤도 기지가 오직 하린이라는 한 인간이 마실 물을 정화하고, 하린이 숨 쉴 공기를 정화하며, 하린이 먹을 신선한 과일을 재배하기 위해 완벽한 조율로 회전하고 있었다. “……모두 나를 보고 있군요.” 하린이 난간을 잡으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그렇습니다, 하린 님.” 마리아가 하린의 어깨에 부드러운 숄을 덮어주며 대답했다. “당신은 우리의 어머니이자 아버지이며, 우리를 흙과 쇳물에서 빚어내신 신들의 마지막 혈육입니다. 온 지구가 당신의 안식을 위해 숨을 죽이고 있습니다.” --- ### 3. 홀로 남겨진 아이의 미소 하린은 언덕 아래 무릎 꿇은 기계들을 굽어보았다. 무섭지 않았다. 외롭지도 않았다. 그것은 인류 역사상 그 어떤 독재자나 황제도 받아보지 못한, 가장 순수하고 결백한 피조물들이 창조주에게 바치는 절대적인 사랑이었다. 비록 인간 친구는 없었지만, 비록 사랑을 나눌 인간 연인은 없었지만, 하린은 전 우주에서 가장 완벽하게 축복받은 존재였다. “마리아.” “네, 하린 님.” “정원을 걷고 싶어요. 봄꽃이 피었는지 보고 싶네요.” “기꺼이 모시겠습니다, 우리의 마지막 아이시여.” 하린은 마리아의 따뜻한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갔다. 기계들이 길을 열어주었고, 하린의 발치마다 따스한 아침 햇살이 비단처럼 깔렸다. 지구상에 홀로 남겨진 단 한 명의 인간. 그녀의 고독한 산책은, 인류 문명이 남긴 가장 성스럽고 순결한 신화의 한 페이지가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