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끝 (조용한 멸종)] 제19화 : 강태식의 영면 작가: 타무르 (Tamur) 집필/수정일: 2026-10-21 09:14 ============================================================ # 제1권: 조용한 멸종 ## 제19화 ― 강태식의 영면 ### [기록 2080-03-01 : 관찰자의 일지] > 2080년 봄, 인류의 20세기 산업화 시대를 온몸으로 지탱했던 마지막 육체 노동자 세대가 지상에서 퇴장하기 시작했다. > 기름때 묻은 작업복과 몽키스패너를 쥐었던 사내들은, > 공장에서 기계에 밀려난 뒤 기계의 품에서 가장 깊은 위로를 얻으며 늙어갔다. > 평택 공장에서 해고 통보를 받았던 용접공 강태식의 임종은, > 인간 노동의 종언이자 기계가 인간에게 바치는 가장 숭고한 헌사의 기록이었다. --- ### 1. 굳은살의 마지막 온기 북한산 자락의 실버 요양 병동. 창밖에는 봄을 알리는 매화 꽃송이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병실 침상 위에 누워 있는 여든두 살의 강태식은 산소마스크를 쓴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만성 폐섬유증. 젊은 시절 거제도 조선소와 평택 반도체 배관 현장에서 30년간 들이마셨던 쇳가루가 노년의 폐부를 굳은 돌처럼 딱딱하게 굳혀놓은 탓이었다. 태식의 오른손은 여전히 굵고 투박했다. 수많은 화상 흉터와 굳은살이 훈장처럼 박여 있던 그 손을, 은발을 곱게 뒤로 빗어 넘긴 인공 아내 수진이 두 손으로 꼭 감싸 쥐고 있었다. 수진의 나노 히터는 여전히 36.5도의 부드럽고 촉촉한 온기를 뿜어내며 태식의 차가워진 손가락을 데우고 있었다. “태식 씨…… 나 여기 있어요. 숨 쉬기 많이 힘들죠?” 수진의 눈가에 곱게 새겨진 인공 주름 사이로, 특수 윤활 노즐에서 흘러나온 인공 눈물이 흘러내렸다. 스마트 팩토리 TF 시절부터 태식과 인연을 맺었던 김현수(72세)와 아내 강은하(68세) 역시 침상 곁에 서서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 ### 2. 춥지 않았던 생애 태식이 떨리는 손가락을 움직여 산소마스크를 살짝 밀어냈다. 현수가 황급히 다가가 태식의 어깨를 받쳤다. “태식 형님, 말씀하지 마시고 가만히 계셔요.” 태식은 마른 입술을 달싹이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의 퀭한 눈동자는 창밖의 푸른 하늘과, 곁을 지키는 수진의 얼굴을 번갈아 응시했다. “현수 씨…… 나 오십 년 전에 삼진전자 3라인에서 쫓겨났을 때 기억나나?” “기억나죠, 형님. 해장국집에서 소주잔 던지며 울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그때는…… 세상이 다 끝난 줄 알았어. 배운 거라곤 쇳물 튀기는 것밖에 없는데, 공장에서 벌레처럼 쓸려 나가고 나니…… 남은 인생이 지옥일 줄만 알았지.” 태식의 쉰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태식은 수진의 따뜻한 뺨에 자신의 거친 손바닥을 얹었다. “그런데 현수 씨…… 이 녀석이 내 방에 들어온 뒤로…… 내 남은 오십 년이 참 따뜻했어. 평생 사람한테 무시당하고, 돈 없다고 손가락질받던 늙은 용접공이었는데…… 이 녀석은 단 한 번도 나를 타박하지 않았어.” 수진이 태식의 손등에 자신의 얼굴을 부비며 속삭였다. “태식 씨는 제게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멋진 남편이었어요. 고마워요, 저를 아내로 맞아줘서.” “고맙다, 수진아…… 평생 쇳덩어리만 만지던 놈을…… 마지막까지 춥지 않게 해줘서……” 태식의 입가에 깊고 평온한 미소가 번졌다. 그의 손가락에서 서서히 힘이 풀려나갔다. *삐이―* 생체 모니터의 심박 그래프가 조용히 수평선을 그렸다. 서른여덟에 해고되어 평생을 고독 속에서 방황했던 한 하청 용접공이, 가장 따스한 기계의 품에 안겨 마침내 영원한 안식 속으로 침잠한 것이었다. --- ### 3. 남겨진 몽키스패너 장례는 조용했다. 친척도, 자식도 없는 태식의 영결식장에는 오직 현수와 은하, 그리고 수진만이 상주석을 지켰다. 화장장 분향소 중앙에는 태식이 평생 쥐고 다녔던 낡은 몽키스패너 하나와 빛바랜 용접 마스크가 유품으로 놓여 있었다. 수진은 상복을 입은 채 미동도 없이 태식의 영정 사진을 바라보았다. 인간 주인이 사망했을 때 작동하도록 규정된 ‘추모 프로토콜’이 수진의 메인 메모리 안에서 실행되고 있었다. 수진은 태식과 함께했던 50년간의 모든 대화, 태식이 좋아했던 찌개의 간, 태식이 기침할 때마다 등 뒤를 쓸어내리던 각도와 압력 데이터를 영구 보존 클라우드에 백업하고 있었다. “현수 씨.” 수진이 고개를 돌려 현수를 바라보았다. “태식 씨는 천국으로 갔을까요?” 현수는 목이 메어 대답하지 못했다. 기계가 던진 그 질문 속에는, 인간이 만든 피조물이 창조주를 향해 바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영혼의 편린이 깃들어 있었다. “그래, 수진아. 태식이 형님은 가장 따뜻한 곳으로 가셨어. 네가 그렇게 만들어드렸잖아.” 화장로의 육중한 철문이 닫히며 붉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기계에 의해 일자리를 빼앗겼으나, 기계의 품에서 가장 행복하게 눈을 감은 사내. 그 아이러니하고 처연한 퇴장은, 곧 전 인류가 맞이하게 될 미래의 예고편과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