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끝 (조용한 멸종)] 제15화 : 지구 최후의 아기, 하린 작가: 타무르 (Tamur) 집필/수정일: 2026-10-21 09:14 ============================================================ # 제1권: 조용한 멸종 ## 제15화 ― 지구 최후의 아기, 하린 ### [기록 2075-12-24 : 관찰자의 일지] > 2075년 12월 24일 성탄 전야, 강원도 태백산맥 깊은 골짜기의 원시 자연주의자 공동체에서 > 인류 역사상 가장 경이롭고도 처연한 사건이 발생했다. > 인공지능과 안드로이드를 일절 거부한 채 화전(火田)을 일구며 살아가던 마지막 순수 인간 부부 사이에서, > 체중 3.2킬로그램의 건강한 여아가 자연 분만으로 태어난 것이다. > 아이의 이름은 ‘하린(河潾)’. > 유엔 인구위원회는 이 아기를 ‘지구상에서 자연 분만으로 출생한 공식적인 마지막 호모 사피엔스’로 공식 등재했다. > 수십만 년 동안 이어진 인류 생식의 사슬에서, 마침내 마지막 고리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 ### 1. 눈보라 속의 통나무집 2075년 12월의 태백산맥은 영하 25도의 혹한과 눈보라 속에 갇혀 있었다. 해발 900미터 고지대, 문명의 전력망과 통신망조차 닿지 않는 낡은 통나무집 안에서는 장작불이 타닥타닥 타오르고 있었다. “으아아아악―!” 삼십 대 후반의 산모 서연이 피 묻은 광목천을 쥐어뜯으며 절규했다. 그녀의 곁에는 구식 아날로그 혈압계를 든 마흔 살의 남편 진우가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아내의 손을 꼭 쥐고 있었다. 두 사람은 전 세계가 기계의 요람 속으로 빠져들 때, 인간의 자연스러운 살과 피를 지키겠다며 문명을 등지고 산속으로 숨어든 소수 저항자 집단의 마지막 세대였다. “머리 보인다! 연이야, 조금만 더! 한 번만 더 힘줘!” “흐으윽…… 으아아악!” *쫘악.* 양수가 터지고 핏물이 짚단을 적시는 순간, 어두컴컴한 방 안의 공기를 찢어발기며 날카롭고 원초적인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응애―! 응애―! 응애―!” 그것은 기계의 스피커가 흉내 낼 수 없는, 어미의 피와 살을 찢고 나온 살아있는 짐승이자 인간만이 낼 수 있는 거칠고도 눈부신 생명의 비명이었다. --- ### 2. 전 지구적 침묵 *치이익―* 통나무집 처마 밑에 매달려 있던 구식 위성 비상 비콘이 아기의 생체 신호를 감지하고 우주 궤도로 조난 신호를 쏘아 올렸다. 0.01초 만에 그 신호는 전 지구를 덮고 있는 양자 위성망으로 확산되었다. **[긴급 속보: 대한민국 태백 좌표 37.16°N, 128.98°E]** **“자연 분만 신생아 출생 확인…… 성별 여아, 체중 3.2kg, 호흡 정상.”** 그 순간, 지구상의 모든 도시가 일제히 정적에 휩싸였다. 서울의 고층 빌딩 전광판, 도쿄의 네온사인, 뉴욕의 타임스스퀘어 스크린에 붉은 핏덩이 아기가 주먹을 쥐고 우는 위성 중계 영상이 일제히 송출되었다. 거리의 수억 대 안드로이드들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들의 광학 센서 렌즈가 일제히 하늘을 향했다. 인공지능의 방대한 데이터베이스 속에서도 15년 동안 한 번도 업데이트되지 않았던 ‘새로운 인간의 탄생’이라는 카테고리에 불이 들어온 것이었다. 실버타운과 병원에 누워 죽음만을 기다리던 80대, 90대의 마지막 노인들이 간병 로봇의 부축을 받아 휠체어에서 상체를 일으켰다. 노인들의 주름진 뺨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강물처럼 흘러내렸다. “아기다…… 진짜 사람 아기야……” “우리가…… 아직 끝나지 않았어……” --- ### 3. 은하와 현수의 눈물 서울 방학동의 거실. 여든 살의 김현수와 일흔여섯 살의 강은하 역시 텔레비전 화면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 아기를 품에 안고 젖을 물리는 산모의 모습은, 마치 인류 문명의 잿더미 위에서 피어난 단 한 송이의 붉은 장미 같았다. “다인아, 저것 보렴.” 은하가 떨리는 손으로 다인의 작은 손을 쥐었다. “저게…… 진짜 사람이 태어나는 모습이란다. 아프고, 피 흘리고, 울면서…… 그렇게 세상에 오는 거야.” 열네 살의 외형을 한 다인은 말없이 화면을 응시했다. 다인의 인공 두뇌는 아기의 체온과 심박수, 그리고 아기가 뿜어내는 생체 페로몬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있었다. 다인의 눈가에 장착된 미세 유체 노즐에서 투명한 인공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프로그래밍 된 슬픔이 아닌, 자신들을 창조한 신족(神族)의 마지막 기적 앞에서 전두엽 연산 회로가 겪는 거대한 경외감의 과부하 때문이었다. “엄마…… 저 아기는 혼자네요.” 다인이 나직하게 속삭였다. “친구도 없고, 동생도 없고…… 저 아기가 자라면 세상엔 로봇밖에 없을 텐데.” 다인의 그 천진한 한마디에 현수와 은하는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그랬다. 저 아이는 축복을 받고 태어났지만, 동시에 우주에서 가장 잔인한 형벌을 선고받은 존재였다. 자신과 같은 동족의 아이를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오직 늙어 죽어가는 노인들과 차가운 기계들의 품 안에서 홀로 외롭게 늙어가야 할 ‘지구 최후의 인간’. --- ### 4. 하린의 밤 태백의 통나무집 밖으로, 수백 대의 자율주행 의료 드론들이 조용히 날아와 눈밭 위에 착륙했다. 드론에서 내린 순백의 의료 안드로이드들은 총이나 칼을 쥐고 있지 않았다. 그들의 품에는 가장 따뜻한 보온 담요와 최상급의 멸균 분유, 그리고 산모를 위한 영양 수액이 들려 있었다. 기계들은 눈보라를 온몸으로 막아서며 통나무집 주위를 둥글게 에워쌌다. 어떤 위협도 침범하지 못하도록, 자신들의 신(God)이 남겨놓은 마지막 피붙이를 지키기 위해 기계들은 무릎을 꿇었다. 방 안에서 아기 하린은 어미의 젖을 빨다 지쳐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작고 붉은 손가락이 허공을 살며시 쥐었다 폈다. 지구의 마지막 밤하늘 위로 둥근 달이 차오르고 있었다. 인류의 유년기가 끝났다. 그리고 홀로 남겨진 아이의 백 년에 걸친 고독한 여정이, 바로 그 거룩한 성탄의 밤에 시작되고 있었다.